[인터뷰] 세브란스병원 재활의학과 나동욱 교수

하반신 완전마비로 휠체어가 없이는 스스로 움직일 수 없는 환자가 서서 걸었다. 과거였다면 기적이었다고 할 것이다. 하지만 현재는 기적이란 단어 앞에서 단서가 붙는다. ‘로봇에 의한’이라는.

‘아이언맨’과 같은 영화에서나 보고, 먼 미래의 일이라고만 여겨졌던, 우리 신체를 대신하는 로봇이 현실화되고 있다. 지난 8일 스위스 취리히 아레나에서 ‘아이언맨 올림픽’으로 불리는 제1회 사이배슬론(CYBATHLON)에서 하반신 완전마비 환자인 ‘김병욱’(42세)씨가 나동욱(연세의대 재활의학과)?공경철(서강대 기계공학과) 교수팀이 개발한 로봇슈트인 ‘워크 온’(Walk-on)을 착용하고 출전해 독일과 미국선수에 이어 3위란 쾌거를 올렸다는 소식도 이를 반증한다.

그럼 워크 온은 어떻게 개발된 것일까. 당장 상용화가 가능한 것일까. 상용화가 가능하다면 비용은 어느 정도일까. 나동욱 교수를 만나 궁금증을 풀어봤다.




-먼저 의사로서 로봇에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가 궁금하다.
전공의 때부터 이 분야에 관심이 많았다. 특히 애니매이션이나 영화에서 사용되기도 하는 동작분석(motion analysis)을 실제 임상에서 장애를 가진 이들의 움직임을 분석해 원인을 찾고 치료하는 것에 관심이 컸다.

해외연수를 가서도 미국 스탠포드대학에서 바이오엔지니어링 분야를 공부했다. 연수에 돌아와서 관심은 계속됐는데, 그러다가 서강대 공경철 교수를 만났다. (로봇을) 연구 중인데 환자에게 적용해보고 싶다고 하더라.

-의학과 다른 분야와의 협력 연구가 어렵다는 이야기가 많은데.
여러 코드가 잘 맞았다. 우선 대학도 (신촌에 위치해) 가깝고, 서강대는 의대가 없어서 소속 병원과 같이 연구해야한다는 압박도 없었다. 사실 의사와 엔지니어들이 같이 연구 하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다. 각자 전문가이고, 관점이 다르기 때문이다.

하지만 연수시절 로봇 관련 엔지니어들의 언어를 수박 겉핥기일지언정 배웠고, 공 교수는 임상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 소통에 어려움은 없었다.

같이 연구를 하던 중 사이배슬론(Cybathlon, 척추 장애인 로봇 챔피언십) 대회가 있다는 걸 알게 돼, 한번 참가해보자고 의기투합했다. 이후 로봇슈트(Walk on)를 개발해 완전마비 장애인이 장애물을 통과하는 ‘착용형 로봇’ 종목에 참가했다.

(사이배슬론은 의공학 분야의 최고 기술을 겨루기 위해 만들어진 국제대회다. 뇌-기계인터페이스, 의족, 의수 등 다양한 주제로 일종의 올림픽과 같은 형태로 경기가 진행된다. 올해 10월 첫 대회가 스위스에서 열렸으며, 2회는 2018년 한국에서 개최된다.)

-참가 과정에 어려움은 없었는지. 특히 참가선수를 모집하는 게 쉽지 않았을 것 같다.
지난해 여름에 참가를 결정한 후 로봇 개발에 착수했고, 동시에 참가선수도 찾았다. 참가선수는 대회 규정에 맞는 정도의 신체적 손상이 있어야 하고, 참가의지도 있어야 했다. 선수에게 충분한 경제적 지원을 할 수 있는 여건도 되지 않았다.

정말 쉽지 않은 상황이었지만, 수소문 끝에 생각보다 빨리 선수를 찾을 수 있었다. 바로 김병욱 선수였다. 김 선수는 지체 1급으로 휠체어 생활을 하고 있었는데, 휠체어 럭비 선수 활동 등 평소 운동을 많이 하고, 승부욕도 있었다. 이런 선수를 찾은 건 정말 행운이었다.

-김 선수가 로봇슈트를 착용하고 참가하기까지 힘든 점은 없었나.
사실 많은 이들이 로봇을 개발해서 환자에게 입히면 바로 걸을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그 과정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자전거를 못타는 사람에게 수천만원대 자전거를 준다고 바로 탈 수 있는 게 아니 듯, 훈련이 필요하다. 오랫동안 해당 신체를 사용하지 않았던 환자가 로봇을 착용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환자의 뼈가 약해지지는 않았나 검사해서 섰을 때 뼈가 부러지지는 않을지, 관절이 굳지는 않았는지 등 많은 사전 검사가 필요하다. 그 후 중심을 잡는 방법 등 단계에 맞게 훈련을 해야 한다.

-개발비, 참가비 등 비용은 어떻게 감당했나. 정부 지원은 없었나.
딱히 정부의 지원은 없었다. 공 교수와 내가 일부 감당을 하고, 스타트업인 에스지메카트로닉스의 도움을 받았다. 그렇게 개발 및 참가 운영비 등을 충당했다.

하지만 김병욱 선수에게 충분한 경제적 대가를 줄 정도는 아니었다. 김 선수는 일주일에 네 번씩 경기도 광주에서 세브란스병원까지 와서 훈련을 받았다. 개인사업을 하는 김 선수가 의지와 열정이 없었다면 대회 참가는 힘들었을 것이다. 너무나 감사하다. 우리들끼리는 너무 고생한 김 선수에게 대회 후 CF가 들어왔으면 좋겠다는 농담 아닌 농담을 하기도 했다(웃음).

-CF 제의는 없었나.
방송 촬영 제안은 있지만, 아직까지 CF 제안은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웃음).

사실, 우리나라는 장애인과 관련해서 사회적 관심이 너무 적다. 솔직히 우리가 이번에 언론에서 관심을 보이는 것도 로봇과 관련됐기 때문이란 생각이 든다. 장애인에 대한 사회적 관심은 개선돼야 한다.

-이번 3위 소식 후 환자들 중 ‘Walkon’에 관심을 보인 이들도 많았을 것 같다.
그렇다. 하지만 Walkon은 이번 대회를 위해 개발한 로봇이다. 즉, 대회 종목에 최적화된 것이고, 처음 개발했기에 일부 ‘오버 스펙(Over Spec)’한 부분도 있다.

예컨대 모터를 4개만 달면 되는데 8개를 달았다거나, 배터리도 여유 있게 만들다보니 대회가 끝나고도 반도 채 쓰지 않은 등과 같이 말이다. 상용화를 위해선 실제 환자들이 사용할 때 이동성 등이 용이하도록 해야 하는데, 이 단계까지 가기 위해선 연구와 충분한 비용이 필요하다.

-기업들의 관심은 없었나.
일부 관심을 보인 곳도 있지만, 구체적으로 진전된 건 없다.

-로봇슈트 상용화 시점은 언제라고 예상하나.
이미 해외에선 일부 업체들이 제품을 판매하고 있긴 하다. 하지만 너무 비싸다. 한 대당 1억원을 호가한다. 의료기관이 훈련용으로 사용하기 위한 거라면 10억원이 넘어도 도입하겠지만, 개인이 사용하는 보조기기에 억대 비용을 부담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더구나 현재 나온 제품들은 어느 정도 신체적 기능이 가능한 이들이 대상이다. 이를 국내 몇몇 수입사에서 로봇슈트를 들여왔지만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환자가 입고 바로 걸을 수 있기 위해선 훈련 과정이 필요하다는 걸 제대로 인식하지 못했고, 또 제품에 대해서도 정확하게 알지 못해 소비자를 찾지 못했다고 들었다.

개인적으로는 실질적으로 환자에게 도움이 될 로봇슈트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것 보다 훨씬 빨리 나올 것이라고 예상한다. 보행 관련 로봇뿐만 아니라, 팔이 마비된 환자를 위한 제품 등 로봇 기술이 성과를 보여줄 것이란 확신이 있다.

-개인적인 목표나 바람이 있다면.
우선은 로봇 슈트가 대중화될 때까지 연구를 계속할 생각이다. 또 작년 근무력증을 앓고 있는 학생이 입학했다. 알다시피 의과대학을 졸업하기 위해선 임상실습 등 몸이 불편한 경우 제한적일 수밖에 없는 커리큘럼이 있다. 그러나 이 친구가 임상실습까지 잘 마치고 졸업을 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방법을 모색 중이다. 이를 포함해 장애인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이 되는 제품이 나올 수 있도록 노력할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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